미래를 보는 선택이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
고대 그리스
위대한 리더, 위대한 팔로워. 살라미스 해전
공포 앞에서 현명한 선택은 더욱 중요해진다.
공포를 통제하라, 마라톤 전투
진짜 고향은 내 마음이 다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오디세이아
복수는 쉽고 재회는 어려워
복수의 칼을 드는 것은 쉽지만, 관계를 회복하는 일은 어렵다.
나를 증명하는 건 함께 지나온 시간의 흔적이다.
변장한 왕의 귀환
도착은 장소의 문제지만, 귀환은 관계의 문제다.
도착했다고 돌아온 것은 아니다
여정의 끝에 남는 것은 그 길에서 발견한 나 자신이다.
괴물의 바다를 지나온 남자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낙원은 감옥과 같다.
불멸의 제안을 거절한 한 인간
성장은 익숙한 자리를 떠나는 순간 시작된다.
오디세이아의 시작: 집을 떠나야 어른이 된다
살아있을 때는 몰랐던 의미가, 끝에 도달해 비로소 또렷해진다.
돈키호테
차이를 넘어선 영혼의 동행, 돈키호테와 산초
서로 다른 두 사람도 함께 걷다 보면 서로의 의미가 된다.
낡은 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시 빚어낼 때, 의미가 태어난다.
기사도와 로만세의 재해석《돈키호테》
위작이 판을 쳐도, 나는 내가 진짜임을 끝까지 증명하고 싶었다.
《돈키호테》속 위작 《돈키호테》
이상을 향한 꿈은 초라한 결과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간절했다.
유토피아에 도전하는 리더, 돈키호테
이타심은 계산 없이, 필요를 먼저 알아채는 마음이다.
이타적 리더십, 돈키호테를 다시 읽다
사실이 어떻든, 내가 그렇게 믿기로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돈키호테의 둘시네아, 리더를 움직이는 사랑
끝까지 믿고 살아낸 삶은 우리가 사라진 뒤에도 오래도록 남는다.
돈키호테의 죽음, 불멸하는 신념
진정한 용기는 승리보다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 태도에 있다.
지는 것 같으나 지는 법이 없도다
보이는 모습 너머에는 말하지 못한 용기가 숨어 있다.
외형과 실제의 미학
타인의 조롱에도 자신 뜻을 잃지 않는 사람이 있다.
웃음을 입은 기사도: 〈돈키호테〉의 패러디 전략
논어와 친해지기
논어
작가 그 이상, 괴테의 숨겨진 얼굴들
괴테
르네상스 개념 제대로 알기
르네상스
왜 쇼펜하우어인가
쇼펜하우어
상인의 손에서 탄생한 르네상스
르네상스 상인의 위대한 발자취
괴테를 스타로 만든 작품, 젊은 베르터의 슬픔
공자와 그의 제자들
논어 개괄하기
괴테의 마지막 대작, 파우스트
르네상스가 남긴 유산
왜 돈키호테인가
괴테의 문학 세계
논어의 핵심: 사람을 알아보는 법
인간은 왜 고통스러운가
행복이란, 고통이 덜한 상태일 뿐
돈과 욕망, 그리고 현대인
돈키호테의 시대적 배경
세르반테스의 분신, 돈키호테
이 시대의 돈키호테란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의 귀환 이야기지만, 그 시작은 아들 텔레마코스의 성장을 다룬 ‘텔레마키아’로 출발합니다. 아버지가 집을 비운 20년 동안 이타카의 질서는 무너지고, 텔레마코스는 무력한 소년처럼 집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아테나의 조언을 따라 아버지의 행방을 찾아 떠나며 그는 세상과 사람을 만나고, 왕의 역할과 공동체의 질서를 배웁니다. 결국 이 여정은 아버지를 찾는 길이자, 텔레마코스가 어른이 되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마침내 등장한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괴물과 싸우는 영웅이 아니라, 칼립소의 섬에 붙잡혀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칼립소는 그에게 늙지도 죽지도 않는 완벽한 삶을 제안하지만, 오디세우스는 불멸보다 자신이 왕이자 남편, 아버지로 살아가야 할 삶을 선택합니다. 그의 귀향은 곧 안락함을 벗어나 고통스럽더라도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여정입니다.
오디세우스는 파이아케스 궁정에서 자신이 겪은 모험을 직접 들려줍니다. 키코네스족의 도시, 로토스의 유혹, 키클롭스의 동굴, 키르케의 섬, 죽은 자들의 세계, 세이렌과 괴물의 바다를 지나며 그는 수많은 동료와 배를 잃습니다. 때로는 살아남기 위해 이름을 숨기고, 때로는 자존심 때문에 더 큰 시련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경험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며, 이름 없는 표류자에서 다시 ‘오디세우스’로 돌아갈 힘을 얻습니다.
오디세우스는 마침내 자신의 활을 되찾아 왕궁을 점거한 구혼자들을 처단합니다. 하지만 《오디세이아》의 결말은 복수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페넬로페에게 남편임을 증명하기 위해 둘만 아는 올리브나무 침대의 비밀을 떠올리고, 아버지 라에르테스에게는 함께 돌본 나무들의 기억으로 자신을 증명합니다. 귀환은 예전 자리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달라진 사람들과 다시 관계를 맺는 일입니다.
오디세우스는 마침내 20년 만에 고향 이타카에 도착하지만, 그곳을 곧바로 알아보지 못합니다. 아테나는 그에게 변장과 신중함을 요구하고, 오디세우스는 왕궁으로 가기 전 충직한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의 오두막을 찾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없는 동안에도 이타카의 진짜 가치를 지켜온 사람을 확인하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 텔레마코스와 재회합니다. 그러나 도착은 귀환의 끝이 아닙니다. 오디세우스는 이제 다시 아버지, 남편, 왕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오디세우스는 거지로 변장한 채 왕궁으로 들어가, 자신이 없는 동안 누가 충성을 지켰고 누가 배신했는지 직접 확인합니다. 늙은 개 아르고스는 가장 먼저 주인을 알아보고, 유모 에우리클레이아는 그의 몸에 남은 흉터를 통해 정체를 알아봅니다. 페넬로페 역시 남편의 소식을 쉽게 믿지 않고 신중하게 확인합니다. 얼굴과 지위는 사라질 수 있지만, 몸에 새겨진 흔적과 함께 나눈 기억은 남습니다. 귀환은 혼자 돌아왔다고 선언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기억하는 누군가에게 다시 알아봐지는 일입니다.
1605년에 출간된 《돈키호테》는 당시 큰 인기를 누렸던 기사소설의 실체를 밝히고 사람들이 허황된 환상의 세계에 유혹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집필되었다. 세상에는 불의를 바로잡고 사랑을 나누며 억압받는 사람들을 도와줄 기사가 꼭 필요하다며 기사가 된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돈키호테는 광인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동기가 매우 순수하고 이타적이라 사람들에게 여운을 남긴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와 상관없이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타인의 평가에 기대지 말라
우리는 타인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애쓰고, 그렇지 못하면 고통스러워한다.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느끼는 모든 걱정과 비애의 절반은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지나친 관심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남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이 아니라, 나의 가치에 대한 스스로의 올바른 평가다. 누군가의 박수로 허영심을 채우기보다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삶을 채우는 진짜 자존감이 필요하다.
삶의 고통을 줄이는 예술의 전략, 관조
쇼펜하우어는 세계의 본질을 ‘삶에 대한 의지’로 보며, 인간은 결핍과 충족을 반복하다 결국 지루함으로 다시 떨어지는 쳇바퀴 속에서 고통을 되풀이한다고 보았다. 그는 이 고통을 덜어내는 방법으로 예술을 제시한다. 이해타산을 잠시 내려놓는 미적 관조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고, 음악은 의지를 직접 흔들어 불안과 절망의 파도를 잔잔하게 가라앉힌다.
《돈키호테》는 기사도 이야기와 로만세라는 두 문학적 원천에서 출발했지만, 단순한 모방에 머물지 않는다. 세르반테스는 기사도 이야기의 허황됨을 패러디하면서도 명예, 사랑, 정의, 자기희생 같은 고귀한 가치를 새롭게 되살린다. 또한 대중가요이자 구전문학이었던 로만세의 인물과 장면, 리듬을 작품 곳곳에 끌어와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독창적인 서사를 완성한다. 이 에세이는 《돈키호테》가 낡은 장르를 조롱하면서도 그 안의 아름다움을 정화하고 고양해, 현대 소설의 원형으로 자리 잡게 된 과정을 보여준다.
돈키호테와 산초는 정반대의 성격과 욕망을 지닌 인물로 출발하지만, 함께 모험을 겪으며 서로에게 스며들고 변화한다. 돈키호테는 낡은 기사도의 이상을 좇는 광인처럼 보이지만, 점차 자기 한계를 넘어서는 의지의 인물로 드러난다. 산초 역시 물질적 보상을 바라는 단순한 종자에서 벗어나, 존엄과 선함을 지닌 독립적인 인물로 성장한다. 이 에세이는 두 사람이 충돌과 의심, 애정과 충성을 오가며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돈키호테》가 그려낸 가장 깊은 동행의 의미를 보여준다.
유토피아: 허구로 현실을 해부하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이상 사회를 그린 책이기 이전에, 16세기 유럽의 권력·불평등·전쟁을 날카롭게 해부한 현실 '비판서'이다. 1부에서 유럽 사회의 모순을 진단하고, 2부에서 전혀 다른 원리로 작동하는 가상의 섬나라를 제시함으로써, 독자 스스로 두 세계를 비교하며, 당연하게 여겼던 가치들을 다시 묻게 만든다. 정답을 설교하지 않고 질문을 던지는 이 복합적 구조야말로 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유토피아』가 읽히고 있는 이유이다.
유토피아
행복은 내 안에서
MBTI처럼 성격을 단순 분류하는 방식은 편리하지만,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성격은 천차만별이며 각자의 고유함에서 가치가 나온다고 보았다. 그는 타고난 성격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으며, 행복·불행의 체감도 성격과 ‘고통 그릇’의 크기에 크게 좌우된다. 대신 삶의 즐거움은 재생적·육체적·정신적 즐거움으로 균형 있게 설계할 수 있고, 여가를 어떻게 쓰느냐가 행복을 결정한다.
양심은 권력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현실을 바꾸려면 권력의 안으로 들어가야 할까, 아니면 밖에서 비판해야 할까? 《유토피아》 속 라파엘과 모어의 팽팽한 논쟁은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지식인은 권력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토머스 모어의 삶과 함께 살펴본다.
빛을 그린 남자, 얀 판 에이크
얀 판 에이크는 마치 눈앞에 실재하는 것과 같이 사물의 질감과 공간감을 표현해 유럽 회화를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렸다. 광학에 대한 지식, 새로운 유화 기법, 화가로서의 도전의식 등을 바탕으로 회화가 미술의 중심을 차지하는 데 일조한 그는 당대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변화의 물결에 올라탄 모험가이기도 했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자신만의 기술로 도전을 거듭한 그의 발자취를 짚어본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 사회
순한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토머스 모어가 던졌던 이 충격적인 문구 속에는 가난, 탐욕이 기준이 된 사회에 땅을 잃은 사람들, 처벌 받는 사람들의 날카로운 분노가 담겨 있다. 500년 전의 이야기가 현대에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를 함께 생각해본다.
유토피아는 정말 이상향일까?
평등하고 질서 잡힌 사회, 유토피아. 그런데 막상 유티피아를 들여다보면 왠지 숨막히는 느낌도 든다. 토머스 모어는 왜 이상향을 완전히 찬양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던 것일까? 《유토피아》가 남긴 가장 불편하고 깊은 질문에 대해 함께 생각해본다.
고독을 즐길 때 내가 보인다
쇼펜하우어는 정신이 풍요로운 사람일수록 고독을 즐기며, 고독 속에서만 마음의 평화와 자유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사람들과 가까워질수록 불협화음과 상처가 생기기 쉽고, 원만히 지내려면 조금이라도 자신의 개성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고독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내적 공허와 권태를 피하려 사교와 자극에 의존한다. 오래 지속되는 행복은 외부가 아니라 내면의 샘에서 나온다.
조용한 삶이 쾌락을 이긴다
쇼펜하우어는 “현명한 자는 쾌락보다 고통 없는 상태를 원한다”라고 말했다. 큰 기쁨을 누린 사람이 아니라, 큰 고통 없이 살아온 사람이 더 행복한 이유는, 행복은 ‘소극적’이라 잘 의식되지 않는 반면, 고통은 의식을 강하게 점유하기 때문이다. 권태를 피하려 향락과 욕망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재앙이 커지고, 화려함은 허상에 불과하다. 참된 기쁨은 소박하지만 큰 고통이 없는 삶에 있다.
《파우스트》가 보여주는 사랑의 진화
파우스트의 행로는 학문의 의미에 대해 좌절한 후 세상에 나가서 파우스트가 경험하는 사건들로 이루어진다. 그중에서 뚜렷하게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제1부>에 나오는 파우스트와 그레트헨의 사랑, 둘째, <제2부>에서 헬레네와 파우스트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펼쳐지는 파우스트의 간척 사업 프로젝트다. 일견 서로 무관하게 보이는 이 이야기들을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하나로 묶어서 파우스트의 동선을 분석해보는 것이 이 글의 의도이다.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파우스트의 사랑이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고 확장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파우스트가 경험하는 사랑의 변천사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려는 사랑의 형태는 첫째, 개인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고, 둘째는 아름다운 것을 향한 사랑으로 펼쳐지며, 셋째는 자기가 살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사랑으로 확대된다.
1개월 무료 체험
Part 01.고대 그리스 전쟁사
파우스트
1417, 근대의 탄생
이한우의 인물지
불안의 끝에서 쇼펜하우어, 절망의 끝에서 니체
돈키호테의 말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젊은 베르터의 슬픔
이한우의 논어 강의
돈키호테를 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