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에 관하여 진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괴테가 남긴 이 한 문장은, 한 인간의 내면이 얼마나 깊고 닿을 수 없는가에 대해 말한다.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다, 결국 그 마음을 점유하려 했던 베르터. 사랑은 이해인가, 아니면 침해인가. 괴테의 시선으로, ‘개인의 고유성’과 ‘사랑의 경계’를 성찰해본다.
# 사랑# 고유성# 젊은베르터의슬픔괴테의 학문적 깊이와 현대적 관점을 조화롭게 엮어 그의 매력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괴테와 함께 과거의 시대를 넘나들며, 그의 삶과 작품에서 새로운 통찰과 영감을 발견한다.

우리는 왜 여전히 괴테를 읽을까? 변호사였고 행정가였으며 과학자이기도 했던 한 사람. 그의 삶은 작품의 배경이 아니라 작품 그 자체였다. 작가 그 이상이었던 괴테의 모습과 마주한다.

짧지만 유럽을 뒤흔들었던 한 편의 소설. 베르터는 왜 사랑을 끝내지 못했고, 왜 생을 끝냈을까? 감정의 진실과 이성의 조율 사이 괴테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태초에 ‘말’이 아니라 ‘행동’이 있었다고 믿었던 한 인간, 파우스트. 지식의 한계 앞에서 악마와 손을 맞잡은 그는, 멈추지 않는 노력을 구원이라 확신한다. 끝없이 전진하는 발걸음은 언제 멈춰 서야 할까?

괴테의 문학은 다름을 배척하지 않고, 서로의 차이를 포용한다. 독일의 언어를 세계 문학의 언어로, 한 인간의 사유를 인류의 성찰로 확장한 거장, 괴테. 그의 문학에서 ‘다름을 품은 인간의 가능성’을 묻는다.
베르터의 편지를 통해 펼쳐지는 이야기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과 관계의 본질에 대한 깊은 탐구이다. 사랑과 고유성, 관계 속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묻고 삶의 본질을 새롭게 바라본다.

사랑과 상실, 기쁨과 고통을 넘나드는 인간의 마음. 그 첫 번째 편지는 단순한 시작이 아니라, 베르터의 세계관 전체를 비추는 거울이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세상을 느끼려 했던 한 청년, 그의 첫 편지에서 이미,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성인가, 감성인가. 머리로 세상을 이해하라던 시대에, 괴테는 가슴으로 세상을 느끼려 했던 청년을 그린다. 베르터는 이성과 마음 사이의 갈등 속에서 자신 존재의 근거를 찾아 헤매다 결국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다.
시청중11:02“개인에 관하여 진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괴테가 남긴 이 한 문장은, 한 인간의 내면이 얼마나 깊고 닿을 수 없는가에 대해 말한다.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다, 결국 그 마음을 점유하려 했던 베르터. 사랑은 이해인가, 아니면 침해인가. 괴테의 시선으로, ‘개인의 고유성’과 ‘사랑의 경계’를 성찰해본다.

'읽는다'는 것은 이해일까, 동일시일까. 베르터는 자신을 텍스트 속에 투사했고, 독자들은 베르터를 괴테의 그림자로 읽었다. 읽기의 경계가 무너질 때, 문학은 현실이 되고 현실은 문학이 된다. 그 경계선 위에서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묻는다.

괴테는 『젊은 베르터의 슬픔』을 통해 묻는다. "정말 사랑일까요?" 베르터의 사랑은 헌신이었을까, 아니면 집착이었을까. 괴테는 사랑이란, 타인을 자신과 같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다름을 품는 일이라 답한다.
파우스트의 여정을 따라가며 실패와 도전, 희망이 교차하는 인간의 본질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신이 만든 질서와 인간의 욕망이 부딪히는 곳, 그 틈에서 태어난 질문,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 문장 속에서 하늘이 내려다본 인간의 초상과 마주한다.

모든 학문을 섭렵했지만, 진리를 깨닫지 못한 인간 파우스트는 지식의 한계 앞에서 무너진다. 진리를 향한 열망은 그를 구원할까, 아니면 파멸로 이끌까. 학자 파우스트의 절망과 욕망 속으로 들어가 본다.

순수한 소녀 그레트헨과 욕망에 흔들리는 파우스트. 우연처럼 시작된 사랑은 그녀의 삶을 비극으로, 그의 영혼을 방황으로 이끈다. 노래하듯 사랑을 꿈꾸던 그레트헨 그녀의 순정은 절망으로 바뀌어 가고, 그 순수함과 파멸 사이에서, 인간의 본질이 드러난다.

신의 영역에 도전한 과학자, 바그너. 그는 생명을 창조하려는 꿈에 몰두한다. 그러나 그가 만든 인조인간 '호문쿨루스'는 완성을 향해 나아가다 오히려 자연으로 돌아가려한다. 지식의 정점에서 다시 원초로 향하는 역설. 괴테는 묻는다. "인간은 어디까지 신의 자리를 넘볼 수 있을까?”

죽은 파우스트의 영혼이 천사들에 이끌려 하늘로 향한다. 회개하지 않은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린다’ 괴테가 마지막으로 남긴 이 한 문장 속에서 인간 구원의 진짜 의미를 묻는다.
『파우스트』의 여정을 따라, 인간이 사랑하고 창조하며 싸워온 욕망의 궤적을 살핀다. 괴테가 그려낸 사랑의 확장, 인조 인간의 탄생, 그리고 전쟁을 넘어선 사유를 통해 인간 존재의 한계를 묻는다.


파우스트의 행로는 학문의 의미에 대해 좌절한 후 세상에 나가서 파우스트가 경험하는 사건들로 이루어진다. 그중에서 뚜렷하게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제1부>에 나오는 파우스트와 그레트헨의 사랑, 둘째, <제2부>에서 헬레네와 파우스트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펼쳐지는 파우스트의 간척 사업 프로젝트다. 일견 서로 무관하게 보이는 이 이야기들을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하나로 묶어서 파우스트의 동선을 분석해보는 것이 이 글의 의도이다.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파우스트의 사랑이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고 확장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파우스트가 경험하는 사랑의 변천사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려는 사랑의 형태는 첫째, 개인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고, 둘째는 아름다운 것을 향한 사랑으로 펼쳐지며, 셋째는 자기가 살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사랑으로 확대된다.


괴테의 『파우스트 제2부』에는 과학자 바그너가 인조인간을 창조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과학자 바그너의 사유는 두뇌중심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최적의 조건으로 합성된 최고의 두뇌적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불철주야 연구에 몰입한다. 그 결과로 태어난 호문쿨루스는 바그너의 기대대로 뛰어난 두뇌 능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인공의 산물인 호문쿨루스 스스로 자연적인 ‘몸’을 얻기 위해 대자연 속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선택함으로써 바그너와는 다른 방향의 길을 가게 된다. 본고는 이러한 호문쿨루스의 행로를 통해 괴테의 문학 세계가 우리 시대의 독자들에게 던지는 화두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세계대전과 같은 참상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괴테 시대에도 전쟁은 중요한 문제였고, 괴테 자신도 전쟁에 참여했다. 이러한 경험은 『파우스트』에도 중요한 모티브로 표현되고 있다. 본고는 괴테가 실제로 어떤 전쟁들을 어떻게 겪었는지,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괴테의 반전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살펴보고, 괴테의 이러한 반전 사상이 <파우스트 제2부>에서는 또 어떤 식으로 표현되고 있는지 분석한다.


괴테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기적 개체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형성원리를 찾고자 했다. 그가 생각하는 공통적 형성원리의 핵심은 ‘개체는 결정되면서 결정한다’는 표현에 담겨 있다. 이 말은 모든 유기적 개체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형성과 그 유기체가 외부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의 동시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괴테는 이 형성원리를 인간의 삶의 원리로 이해한다.


괴테의 소설 『친화력』에서 완벽히 하나가 되는 사랑을 하는 에두아르트와 오틸리에가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 다른 작품의 인물들도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다. 사랑이란 무엇이기에 사랑하는 자들은 죽는가? 에두아르트와 오틸리에의 사랑을 살펴봄으로써 ‘하나됨’이 왜 폭력일 수 있는지 서술한다. 사랑은 ‘하나됨’이 아닌 서로의 ‘다름이 중첩되는 것’이라는 괴테의 생각이 지닌 의미를 밝힌다.


괴테는 다양한 분야에서 엄청난 양의 글을 생산했다. 그가 생산한 글은 그의 앎의 표현일텐데, 어떻게 그는 그 많은 앎을 쌓을 수 있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 글은 그가 자신이 평생 이루어낸 결과물을 ‘집단존재의 작품’이라고 말한 이유와 그가 ‘정돈하기’로 표현한 삶의 태도를 살펴본다. 그 결과 괴테에게 앎이란 ‘낯선 것을 위한 자리를 내 안에 만드는 것’임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